김독서의 책
[시집리뷰] 이병률 - 사람이 온다 본문
이병률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MBC 라디오 '이소라의 FM 음악도시'
작가로 활동한 이력이 있고
2006년에는 「현대시학작품상」
을 수상했으며 현재는 문학동네 계열사
「달」 출판사 대표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끌림」,
「바다는 잘 있습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
「눈사람 여관」,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등이 있다.
사람이 온다
바람이 커튼을 밀어서 커튼이 집 안쪽을 차지할 때나
많은 비를 맞은 버드나무가 늘어져
길 한가운데로 쏠리듯 들어와 있을 때
사람이 있다고 느끼면서 잠시 놀라는 건
거기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 잠을 자다가
갑자기 들리는 흐르는 물소리
등짝을 훑고 지나가는 지진의 진동
밤길에서 마주치는 눈이 멀 것 같은 빛은 또 어떤가
마치 그 빛이 사람한테서 뿜어나오는 광채 같다면
때마침 사람이 왔기 때문이다
잠시 자리를 비운 탁자 위에 이파리 하나가 떨어져 있거나
멀쩡한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져서 하늘을 올려다 볼 때도
누가 왔나 하고 느끼는 건
누군가가 왔기 때문이다
팔목에 실을 묶는 사람들은
팔목에 중요한 운명의 길목이
지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겠다
인생이라는 잎들을 매단 큰 나무 한 그루를
오래 바라보는 이 저녁
내 손에 굵은 실을 매어줄 사람 하나
저 나무 뒤에서 오고 있다
실이 끊어질 듯 손목이 끊어질 듯
단단히 실을 묶어줄 사람 위해
이 저녁을 퍼다가 밥을 차려야 한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힘으로는 닫지 못하는 문이 하나씩 있는데
마침내 그 문을 닫아줄 사람이 오고 있는 것이다
이병률 시집 <바다는 잘 있습니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