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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리뷰

<교장> 르네 마그리트

김독서 2018. 10. 18.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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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교장>


 르네 마그리트 (René Magritte)









제작 배경



1950년대 들어 미국에서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1898-1967)의 명성은 점차 높아져갔다. 마그리트는 자신 전속 딜러로 활동하던 알렉산더 이올라(Alexander Iolas)가 전시를 많이 끌어오지 못하는 데에 불만을 가졌고, 스스로 더 많은 전시에 참가하며 이름을 알리려 노력했다. 결국 1952년 후반부터 1954년 봄까지 마그리트는 12차례 이상 전시에 참여한다. 특히 1954년 3월 뉴욕에서 열린 ‘언어 vs. 이미지(Word vs. Image)’ 전시에 참여하면서 마그리트는 미국의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게 된다. 



이 시기 그려진 마그리트의 작품들은 1930년대 그의 관심사를 재현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1940년대를 거치며 소위 ‘인상주의 시기’와 ‘바슈(vache) 시기’로 불리는 새로운 작품 양상을 선보였던 마그리트는 평론가들의 비판과 대중의 악평, 이올라의 권유 등에 의해 결국 1930년대 자신의 작품 방식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는 작품의 판매량을 고려한, 다분히 전략적인 결정이었으나, 동시에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적 작품들을 세련되게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이 작품에서 역시 마그리트는 꾸준히 관심을 가지던 소재를 다시 변용해 그려낸다.





작품과 표현기법


중산모를 쓴 남자는 전 시기에 걸쳐 마그리트의 작품에 꾸준히 등장한다. 마그리트는 이러한 모티프를 좋아했으며, 작품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의 그 자신 역시 그림과 유사한 중산모를 쓰고 여러 장의 사진을 남겼다. 그리고 그 중 몇몇에서 그는 스스로의 그림 옆에 서서 그림 속 인물과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기도 했다.



마그리트의 작품 안에서 중산모를 쓴 남자는 대체로 인물의 개성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사람의 아들(Le Fils de l’Homme)>, <신뢰(Good Faith)>, <중산모를 쓴 남자(The Man in the Bowler Hat)> 등의 작품에서는 인물의 얼굴을 교묘하게 다른 물체로 가려놓았으며, 유명한 <골콩드(Golconde)>에서는 같은 형상을 한 작은 인물들을 무수하게 그려 넣었다. 이 작품과 <데칼코마니(Decalcomanie)>에서는 남자의 뒷모습을 그려 인물의 개성을 느낄 수 없게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인물을 그린 그림은 그 사람을 알아볼 수 있게 표현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마그리트의 작품들에서는 이러한 예상을 뒤집어 관객이 의문을 가지도록 유도해낸다.



밤과 낮의 공존 역시 마그리트가 지속적으로 다루던 주제이다. 밤의 지상과 낮의 하늘을 함께 그려낸 <빛의 제국(The Dominion of Light)>의 경우 1949년부터 1965년 사이에 17점의 유화와 10점의 과슈(gouache)로 반복해서 다시 그려지기도 했다. 마그리트는 이와 같이 밤과 낮이 함께 있는 장면에 대해 “우리를 놀라게 하는 동시에 그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다. 이러한 힘을 나는 시라고 부른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작품에서는 그와는 반대로 밤의 하늘과 낮의 지상이 그려져 있다. 사내의 중산모 바로 위에 홀로 놓인 그믐달은 그림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한다. 달이 떠있는 하늘에 비해 땅 위는 밝고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러나 그림 속 풍경은 매우 자연스럽게 변하고 있어 밤과 낮이 함께 하는 괴리를 잡아내기는 쉽지 않다.







[네이버 지식백과] 교장 [Le maitre d'ecole] - 르네 마그리트 (ADAGP Banque d'Image, 지엔씨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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